개명나라

자고나니 이름이 바뀌어 있다면?
지난 31년간 김낙빈이란 이름으로 살아왔습니다. 당연히 저를 아는 모든 사람은 그 이름으로 부르고, 행정·법적 서류나 학교, 직장에서 모두 그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모두가 그렇듯이 아주 평범한 이름이고, 불림이었죠. 그러나 작년 10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호주승계를 위해 호적을 정리하던 저는 제 이름이 김명빈로 바뀌어 버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호적 전산화 작업을 하던 공무원이 '낙'자를 '명'자로 읽고 이름을 본의 아니게 바꿔 버린 것입니다.
본적지에서는 이미 호적이 등재되었기 때문에 법원의 개명 허가가 있어야 바꿀 수 있다며 죄송하다고 몇 번이나 사과했기에 사소한 실수라 생각하고 내가 좀 불편하더라도 법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쁘다는 핑계로 김명빈으로 살기를 10개월,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네 어머니가 그러듯이 어머니는 "점 집가서 물어보고 괜찮으면 명빈으로 해라"하시며, 이 기회에 개명을 요구하십니다. 여자친구는 "이상해. 명빈이 뭐야. 너 아닌 것 같아. 낙빈이 돌려줘"하며 원래의 이름으로 쓸 것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시골 큰집의 큰 형님 역시 "족보에 낙빈으로 올랐고, 돌림자가 '낙'자니까 빨리 바꿔라"며 은근히 압력을 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주변 사람들도 헷갈려하고 어색해 하는데, 본인인 저는 어떻겠습니까?
낙빈으로 계속 살려고(사실은 은행이나 각종 단체에 일일이 신상정보 바꾸는게 귀찮고 엄두가 안나서) 운전면허증이나 주민증도 아직 김낙빈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헛갈립니다. 동사무소에 가서도 이름이 김명빈으로 바뀌었으니 신청인은 김명빈으로 하고, 주민등록증은 김낙빈을 줍니다. 그러면 공무원의 눈길이 이상해집니다. '혹시?'하며 위조 신분증이 아닌가하는 눈으로 봅니다.
그간 일들을 설명해주고 나서야 직원은 서류를 발급해 줍니다. 이제는 공무원들이 알아서 "아직도 법원에 안가셨어요? 빨리 재발급 받든가하셔야 해요"하며 처리해줍니다.
또 한번은 제가 하는 일이 지역 신문기자라 전국적으로 바른지역언론연대에서 매년 2, 3번씩 만나고 수시로 연락하며 4년째 김낙빈 기자로 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연수에서 후배 기자가 상견례자리에서 "김명빈 기자입니다"라고 저를 소개 하는 게 아닙니까. 어찌된 영문인지 궁금해 하는 분들께 일일이 그동안의 과정을 설명하는 것도 고역이더군요.
이 정도는 웃고 넘어갈 수 있지요. 진짜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경찰서까지 갈 뻔했지요. 차를 몰고 가다 '아차 실수'로 위반 스티커를 발부받게 되었습니다. 집 앞이기에 신분증은 안 가지고 있었고, 의경이 주민번호와 이름을 대라기에 무심코 김낙빈으로 대답했습니다. 그후에 일어난 일이란…. 휴….
그 의경은 이름이 틀리다는 이유로 10분동안 본적지, 주소, 차량소유주, 이것 저것 물어보았습니다. 나의 사정을 이야기 듣고 나서도 미심쩍어 합니다. 겨우 김명빈으로 스티커 발부받고 나서도 스티커보다는 이름때문에 죽겠다는 생각만 듭니다.
이렇게 불편한 점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아무리 귀찮고 시간이 없어도 법원에 가서 개명신청을 해야 겠다는 결심이 섭니다. 31년간 내 곁을 지켜준 김낙빈이란 이름이 이제는 소중하고 귀하게 느껴기까지 합니다. 법원의 개명허가를 얻으면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헷갈리며 고생하던 친구들과 삼겹살 파티나 벌여야겠습니다.
김낙빈 기자 기사입력 2003-08-09